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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해방의 아버지, 윌리엄 윌버포스

2009/11/11 11:49 | Posted by 벤자민 코넬리

윌버포스의 생애를 그린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


한참 국민연금과의 투쟁을 이어나가던 무렵, 제 다큐멘터리를 본 어떤 대학생이 저에게 메일을 보내와 이 영화를 권해주었습니다. 200년 전에도 어떤 남자가 나쁜 제도와 싸워 결국 그 제도를 무너뜨리고 승리를 거두었다며, 저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지요.

그 친구에게 미안하게도 저는 마지막으로 한번 온힘을 다해 제가 3년간 수집했던 자료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책을 한권 낸 뒤, 그 싸움에서 물러나 이곳 캐나다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실제로 노예무역이라는 나쁜 제도를 폐지해냈던, 그래서 영국 사회에 바람직한 변화를 가져왔던, 한 남자의 위대한 삶을 보며, 저에게 부족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좋은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Amazing Grace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찬송가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던데,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그 노래가 노예해방과 관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죠. 참고로, 찬송가 Amazing Grace의 가사는 한때 노예 무역을 하다가 참회하여 목사가 된 존 뉴튼 (John Newton)이라는 영국사람이 만든 찬송가 제목입니다. 존 뉴튼은 1748년 그레이하운드 (Greyhound)라는 노예무역선을 타고 있었는데 폭풍우가 몰아치고 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을 때 하나님을 찾으면서 회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훗날 목사가 된 뉴튼은 윌버포스를 도와 노예무역 반대운동에 동참하게 됩니다.

노예해방, 하나님이 주신 '사명'

1787년 10월 28일, 28세의 젊은 영국 하원의원 윌리엄 윌버포스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내 일생을 바쳐 완수해야 할 두 가지 사명을 주셨다. 하나는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국 사회의 악습을 개혁하는 일'이다."

당시 영국은 세계 최고의 해상 국가였다. 2백만 명의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북아메리카로 실어 나르며 영국이 벌어들인 수입은 당시 국가의 수입 중 1/3을 차지했다. 거기에 노예산업으로 인한 선원 고용효과와 선박 수요도 영국 경제에 큰 몫을 하고 있었다.

윌버포스는 이런 영국의 세태에 대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당당히 맞섰다. 그는 "영국이 진정 위대한 나라가 되고 싶다면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하는데, 노예제도는 하나님을 자극하는 일"이라며 노예제도 지지파를 비판했다.

그는 150회의 대국회 논쟁은 물론 탄원서 제출운동, 설탕 불매운동, 책자 출판 등 대중 여론을 조성하는 방법으로 노예제도 폐지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노예제도 지지자들에게서 온갖 중상모략과 비방, 두 차례의 암살시도 등에도 절대 굴하지 않고, 뜻있는 목사들과 평신도 리더들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의 믿음을 더욱 굳게 지켰다.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도 윌버포스의 열정에 감복해 1791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누가 그대와 맞서 싸울 수 있겠는가?" 하는 편지를 보내 그를 격려했다.

"사명 다하고 죽으니 감사할 뿐"

이렇게 뜻을 굽히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려고 노력한 결과, 윌리엄 윌버포스는 영국 노예해방의 아버지가 됐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사회 악습을 타파하는 데 온 생애를 바쳐 '영국의 양심'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윌버포스의 오랜 투쟁 끝에 1807년 2월 23일, 영국 하원의회는 그에게 유례없는 찬사를 보내며 '노예무역폐지법'을 통과시켰다. 하나님의 법에 충실하려는 그의 노력이 사회 기득권층의 반발을 무너뜨리고 영국 역사에 새 이정표를 그은 것이다.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나라, 영국'을 위해 달려 나갔다. 가난한 이들을 농락하던 복권을 폐지하고, 저소득층 무상의료지원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과다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어린이노동 보호법'을 제정했다.

또한 상류사회 남자들의 '결투제도' 폐지에 앞장서 귀한 목숨을 지키려 노력했고, 호화 파티만 일삼던 귀족 부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이들이 여가시간을 사회봉사에 쓰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윌버포스의 노력은 1833년 7월 27일, 그가 하나님 앞에서 뜻을 세운지 46년만에 그 결실을 맺었다. 영국 의회가 노예제도 자체를 없애는 '노예제도 폐지법'을 의결한 것이다. 이 법안의 통과로 80만 명에 달하는 영국의 노예들이 자유를 얻게 됐다.

노예제도폐지법이 통과되고 불과 사흘 후, 하나님의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는 "영국이 노예제도를 통해 얻는 이득을 포기하는 날을 목도하고 죽게 하시니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중략)

윌버포스의 전 생애는 '하나님의 법에 충실한 삶'이라고 압축할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충실히 지켜나가는 것이 곧 나라를 살리는 길임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는 헌신된 하나님의 사람 한 명이 부패한 사회에 얼마나 큰 빛을 비출 수 있는지에 대한 증거로 남았다.

또한 그의 영향으로 영국 젊은 정치가의 3분의 1이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됐다. 윌버포스의 전기를 지은 영국의 저널리스트 '가트 린'은 "한 사람의 맑은 영혼이 한 나라 전체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좋은 예"라고 적었다.
@이재영 뉴스미션 인턴기자 redin4u@naver.com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25세에 하원의원이 된 윌리엄 윌버포스가 영국에서 노예제도를 완전히 폐지하기 위해 들인 시간은 46년이었습니다. 물론 운동을 시작한지 20년만인 1807년에 이미 대세를 굳히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도 20년이라는 시간을 걸렸던 것이지요.

그저그런 집안에서 태어나, 수도권 대학을 졸업하고, 23세의 대학생이었던 제가 국민연금제도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기 위해 들인 시간은 3년이었습니다. 사실 그 3년도 저에겐 엄청난 모험이었고, 결국엔 버티지 못하고 투쟁에서 발을 빼고 말았는데, 그래서인지 무려 46년간 신념을 지켜낸 윌리엄 윌버포스의 삶은 저에게 참으로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멋진 삶을 살다간 사람의 뒷모습은 왜 이리도 아름다운 것일까요. 저는 비록 윌버포스처럼 똑똑하지도 않고, 부유하지도 않지만, 그의 삶이 가리키는 방향이 옳다는 것은 확실히 알겠습니다. 이런 멋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그 친구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네요.


윌버포스의 생애를 그린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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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1/12 14:43

    살아있구나! ^^

  2. 2009/11/12 14:43

    살아있구나! ^^

나는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교동에서 독일 〈슈피겔〉 지와 인터뷰를 하다가 비서관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왜 그때 내가 그런 표현을 했는지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온 과거를 돌아볼 때 그렇다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노 전 대통령 생전에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에 처해지는 상황을 보고 아무래도 우리 둘이 나서야 할 때가 머지않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나는 상주 측으로부터 영결식 추도사 부탁을 받고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지 못했습니다. 정부 측에서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어이없기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정부에 연민의 정을 느꼈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한 추도사는 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영결식장에서 하지 못한 마음속의 그 추도사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추천사로 대신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이 3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십시오.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을 살았던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같이 유쾌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탁월한 식견을 가진 그런 지도자와 한 시대를 같이했던 것을 나는 아주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저승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동안 부디 저승에서라도 끝까지 국민을 지켜주십시오.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십시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우리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조문객이 500만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그것이 한과 한의 결합이라고 봅니다. 노무현의 한과 국민의 한이 결합한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억울한 일을 당해 몸부림치다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나도 억울합니다. 목숨 바쳐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으니 억울하고 분한 것입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입니까. 1980년 광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1987년 6월항쟁을 전후해서 박종철 학생, 이한열 학생을 포함해 민주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그런데 독재정권, 보수정권 50여 년 끝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10년 동안 이제 좀 민주주의를 해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되돌아가고 경제가 양극화로 되돌아가고, 남북관계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꿈같습니다, 정말 꿈같습니다.

이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은 “각성하는 시민이어야 산다.”, “시민이 각성해서 시민이 지도자가 될 정도로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말해온 ‘행동하는 양심’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 각성하는 시민이 됩시다. 그래야 이깁니다. 그래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그 길은 꼭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동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바르게 투표하면 됩니다. 인터넷 같은데 글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민주주의 안 하는 정부는 지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기일 때, 그것조차 못한다면 좋은 나라와 민주국가 이런 말을 우리가 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은 타고난,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감각을 가진 우리 헌정사에 보기 드문 지도자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을 사랑했고, 가까이했고, 벗이 되고자 했던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항상 서민 대중의 삶을 걱정하고 그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유일하게 자신의 소망으로 삼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당한 조사 과정에서 갖은 치욕과 억울함과 거짓과 명예훼손을 당해 결국 국민 앞에 목숨을 던지는 것 외에는 자기의 결백을 밝힐 길이 없다고 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알고 500만이 통곡했습니다.

그분은 보기 드문 쾌남아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가졌던 것을 영원히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라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적으로 사는 세상, 이런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뜻을 계속 이어가서 끝내 성취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서거했다고 해도 서거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가 아무리 500만이 나와서 조문했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그 한과 억울함을 푸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분의 죽음은 허망한 것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노무현 대통령을 역사에 영원히 살리도록 노력합시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비록 몸은 건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까지,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이 허무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하니 하루도 쉬지 말고 뒷일을 잘해주시길 바랍니다.

나와 노무현 대통령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평화를 위해 일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후배 여러분들이 이어서 잘해주길 부탁합니다.

나는 이 책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가 그런 후배 여러분의 정진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터뷰하고 오연호 대표 기자가 쓴 이 책을 보니 정치인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기 전후에 국민의 정부와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책으로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공부하십시오.

그래서 민주정부 10년의 가치를 재발견해 계승하고, 극복할 것이 있다면 그 대안을 만들어내서, 결국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고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길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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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에 관대해야 미래가 열린다.

2009/07/03 12:13 | Posted by 벤자민 코넬리

저는 책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역사책을 좋아하지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역사속 인물들의 일대기를 보다보면 저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고, 감탄을 연발하곤 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세상이 좋아서 역사책인데도 지루하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써주시는 작가님들도 많아져서 책을 고를 때면 언제나 행복한 고민에 빠지곤 합니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역사책을 꼽자면, 저는 단연코 「시오노 나나미」님의 「로마인 이야기」시리즈를 꼽습니다. 1년에 한 작품씩 15년에 걸쳐 15권의 시리즈를 완성시킨 작가의 치밀함과 열정은 책의 내용을 떠나서 그 노력의 양 만으로도 저를 숙연하게 만들곤 합니다.


로마인이야기 세트 (전15권)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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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로마인 이야기 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 1권을 다시 꼽자면,
바로 2권, 「한니발 전쟁」을 꼽을 수 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 2: 한니발 전쟁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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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과 스키피오라는 명장들의 두뇌싸움은 물론이고, 로마가 위기에 처하자 한니발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똘똘뭉쳐 로마를 지켜낸 동맹도시들의 "끈끈함", 국고가 바닥나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실천해 사재를 털어 국고를 채웠던 원로원 의원들... 정말이지 책장을 여는 순간부터 닫는 순간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전투에서 패배한 장수를 어떻게 처우하느냐에 대한 두 나라의 차이점이었는데요. 카르타고에서는 패장을 사형에 처한 반면, 로마에서는 패장이라도 다시 한번 만회할 기회를 주었죠.

저는 한니발과의 전쟁에서 로마가 결국에 승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패장에게 관대했던 로마의 자세"였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한니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많은 로마의 장군 중에는 패배를 딛고 일어나 큰 승리를 거둔 이들이 많았지요.

2권에 등장하는 장군 중에서는 "클라우디우스 네로"가 패배를 딛고 일어난 대표적인 케이스에 들어갑니다. 그는 한 때 적의 책략에 빠져 우물쭈물하다 적을 놓친 적이 있었으나, 몇년 뒤 보란듯이 바로 그때의 그 적을 섬멸하여 로마에 큰 공을 세운 장수입니다.

아마도 로마가 이처럼 패장에게 관대했던 데에는 "실수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웠을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이는 끊임없이 무엇인가 개선해나가려 했던 로마인의 기질과도 연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로마인의 기질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언제나 체계화하기를 좋아하지만, 또한 더 나은 방법에 대해서는 항상 열려있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실제로, 로마라는 사회 자체가 처음엔 왕정으로 시작하여, 공화정으로 갔다가 다시 왕정으로 돌아가는 "변화"를 겪었으며, 국가의 규모도 조그만 도시국가에서 지중해를 제패한 제국으로 "변화"해왔으며, 군사제도도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변화"하는 등, 끊임없이 변화를 겪은 사회였습니다.

이러한 로마인의 기질에서 "(모든 것이 변하는 만큼) 사람도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태어나게 되었고, 이러한 믿음은 패배한 장군들에게도 패배를 만회할 "두 번째 기회"를 주어 결국 큰 성공을 얻어낸 것이 아닐까요? 더군다나 한니발 전쟁과 같이 장기전이면서도 전면전이어서 인적자원이 엄청나게 소모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패장을 계속 사형시켰다면 전쟁 자체가 불가능했을테죠.

반면, 패장을 사형에 처한 문화권에서는 "한번 패배한 장수는 또 다시 패배할 것이다." 즉,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을 테구요. 듣자하니 과거 용맹을 자랑하던 고구려에서도 패장을 사형에 처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죽을 각오로 싸우라"는 강력한 동기부여이기도 하지만, 전쟁이란 것이 사람이 하는 일만큼이나 하늘이 하는 일이 작용하는 만큼 단 한번의 패배만으로 유능한 장수를 사형시켰다면 국가적인 손실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생각해보면,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도 패자에 관대한 사회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죠. 비교적 인생의 초반기인 20대에 학벌을 갖추지 못하면 "패배자"로 낙인을 찍어버리고, 또 대학 졸업 후에도 정규직이 되지 못하면 "패배자(비정규직)"으로 낙인을 찍어버리니 이래저래 "패배자"에 속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모험심, 도전의식 이런 것들을 잠시 접어두고, 고소득, 고용안정을 추구하게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패자에 관대했던 로마가, 패자에 엄했던 카르타고를 이겨 지중해를 제패하듯이, 우리나라에서도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실수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웠을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패자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문화가 자리잡으면 실패를 만회하려는 패자들의 노력이 대한민국에 오히려 더 큰 성공을 가져다주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끝으로, 안철수교수님의 한 말씀 올려봅니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실패의 요람이죠. 하지만 실패를 용인한다는 게 달라요. 점점 성공의 확률이 높아지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실패를 하면 재기가 어렵기 때문에 20대 인재들이 도전을 꺼려요. 그래서 20대가 안정지향이 되는 거죠. 사회시스템이 이들을 소떼로 몰고 가는 거예요. 불량 청소년은 없어요. 불량어른만 있지요. -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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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착한 대한민국의 20대

2009/06/28 20:40 | Posted by 벤자민 코넬리

유니세프 친선대사 구로야나기 테츠코씨가 쓴 <토토의 눈물>이란 책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아프리카의 한 난민캠프에서 콜레라가 창궐한다. 매일 수천명씩 어른들과 아이들이 죽어나갔다. 그리고 그 난민캠프에는 콜레라에 걸려 죽은 엄마 곁을 지키는 한 여자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이렇게 생각했다.

"엄마가 죽은 건 전부 내 탓이야. 날 살리려다 엄마가 죽었어."

아이가 엄마를 잃게된 근본적인 원인은 부족간에 전쟁을 일으켜 난민을 발생시킨 사람들에게 있었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불행을 모두 자기 탓이라고 여기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기 전에 스스로를 원망했던 것이다.

토토의 눈물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구로야나기 테츠코 (작가정신,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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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나서, 문득 우리나라의 20대들도 아프리카의 아이들만큼이나 순수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들이 사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은 것은 원망하기 전에, 어른들이 좋아할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홀로 조용히 도서관을 찾는 우리나라의 20대들의 모습에서 순수함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20대들이 마냥 순수하기 때문에 도서관을 찾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복잡한 사회문제 따위에는 신경쓸 겨를이 없는 것이 더 정확한 이유이겠지요. 졸업은 다가오고, 취업은 해야하므로 학점 관리도 해야하고, 영어 점수도 올려놔야 할 것입니다. 남들 다 가는 어학연수를 가기 위해서는 돈도 벌어두어야 합니다.

얼마전 다음 아고라에 한 대학생이 올린 '20대가 말하는 20대의 현실'이라는 글을 보니 공감이 가는 부분이 참 많더군요.

죄송합니다. 시험이 중요합니다. 20대는요, 그깟 허접한 토익 몇점차에 정규직 비정규직이 갈립니다. 학점 0. 몇점 차에 취직이 되고 안되고가 갈립니다. 지금 태반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합니다. 말씀드려도 모르시겠죠. 지금 20대가 얼마나 지독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지금까지 얼마나 지독한 경쟁을 뚫고 살아온 세대인지. 

시위를 제대로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학생들에게 목숨이 걸린일은 취업이고 (강조드리지만 취업하기 장난 아닙니다. 제가 서울대학교 학생임에도 취업위기를 느낀다면, 다른 학교 학생들은 어떨까요?) 정치문제는 지금당장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보여집니다. (중략) 그렇다고 술과 섹스, 스포츠에 미쳐있는 20대 라고 표현할것도 없습니다. 태반의 20대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20대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20대의 한 사람이지만, 제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다들 너무나 열심히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지금의 20대들은 다른 어떤 세대보다도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이 열어놓은 문이 너무 좁은 탓에 필요이상의 과잉경쟁을 하느라 젊은 날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처럼 피곤한 20대의 현실을 보며, 예전 어느 모임에서 보았던 "신문지 게임"을 떠올렸습니다. "신문지 게임"의 게임룰은 무척 간단합니다. 우선 신문지를 한 장 펼쳐놓고 사람들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계속 신문지를 반으로 접어나가면서 신문지 위에 가장 많은 사람이 남는 팀이 승리하는 게임이지요.

한 단계 한 단계 지날 때마다 발 밑의 신문지는 계속 반으로 접히기 때문에 결국 누군가는 신문지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번 신문지 밖으로 밀려난 사람은 다시 신문지 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대한민국 20대는 신문지밖으로 밀려나가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버티는 중인 것입니다.

하지만 20대들이 어른들이 열어놓은 좁은 문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는 동안 어른들은 점점 문을 닫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대한민국의 우수한 20대들이 문을 닫으려는 어른들을 막을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닫혀져가는 철문에 머리를 들이밀기 위해 서로 무한히 경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20대 젊은이들 사이에 '연대'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죠. 비록 좁은 문이기는 하지만,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은 또 아니어서 "나도 혹시?"라는 희망을 갖지 않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88만원 세대>를 쓴 우석훈 교수는 이것을 두고 "희망고문"이라고 지적하신 바 있습니다.

88만원 세대
카테고리 경제/경영
지은이 우석훈 (레디앙,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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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연약한 개인''연대'가 필요하지만, 지금의 20대는 앞선 세대가 시도한 개혁이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연대를 통한 개혁'이 투입한 노력에 비해 결실이 보장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성사여부가 불투명한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보다는 내 능력으로 해결가능한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낫겠다는 극단적인 '자기보호'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개인으로 봐서는 그것은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인간은 언제나 최소 투자로 최대효과를 얻길 바라는데, 최대투자를 해도 최소효과가 보장되지 않는 일에 관심갖기는 쉽지 않겠지요.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합리적인 판단이 모이면 국가 전체로 봐서는 굉장히 부정적인 현상이 벌어집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지금 우리나라의 출산율이겠지요. 각 가정마다 아이를 갖는 것에 적지않은 부담을 느껴 출산을 미루거나 아예 계획을 갖지 않는 "합리적 판단"이 모이자, 대한민국의 존망을 위태롭게 만드는 저출산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위기에 대한민국의 20대가 대응하는 방법 또한 굉장히 부정적인 현상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합니다. 사회의 변혁이라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 요원한 꿈일 뿐이며, 그 꿈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박수 대신 냉소를 보내는 '허무주의''냉소주의', 거기다 '나만 잘살면 돼'라는 '기회주의', '이기주의'가 득세하게 되면, 우리 사회는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고, 삶의 질은 추락할 수밖에 없을테니까요.


그렇다면, 해결책은 뭘까요? 해결책이 있긴 할까요?

많은 전문가들이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아보입니다. 이미 사막의 모래알처럼 바싹마른 황량한 마음들을 찰흙처럼 단단하게 뭉치게 만드는 일이니까요. 많은 분들이 지속적으로 물(관심)을 공급해주지 않으면, 잠시 촉촉해졌다가 이내 다시 바싹마르기를 반복할 뿐이겠죠.

따라서, 뭔가 다른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지금 20대들을 고단하게 만드는 이 상황은 결코 대한민국의 20대들이 나태하거나 무능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 20대들이 업무에서는 필요하지도 않은 영어공부를 하느라 시간과 노력과 금전을 투입하는 것들, 이런 불필요한 비용을 청구하는 사회에 대해 지금의 20대들은 분노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식당에서 단돈 1000원이라도 계산을 잘못해주면 불쾌해하면서, 수백만원씩 하는 등록금을 내게 만들고, 수십만원씩 하는 학원비를 내게 만들고, 소중한 20대의 나날들을 독서실에 보내게 만드는 이 시스템에 대해서는 왜 분노하지 않는 것인지 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침묵은 금이 아닙니다.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란 말도 있듯이, 묵묵히 엉터리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올바른 민주시민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며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 올바른 민주시민인 것입니다.

정치가 혐오스럽다고 계속 외면해보십시오. 정치를 외면하는 사람들을 신경써줄 정치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법안들이 나도 모르게 하나 둘씩 통과되어 우리의 숨통을 조를 뿐입니다.

분노하십시오. 괜찮습니다. 당신만 분노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분노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분노하는 사람들의 연대가 자연히 만들어질 것입니다.

끝으로 1976년에 개봉된 영화 '네트워크'의 일부분을 올려봅니다. 지금부터 30년도 더 옛날에 만든 영화인데도 어쩌면 이렇게 오늘날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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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왜 외국인을 두려워할까?

2009/06/23 21:18 | Posted by 벤자민 코넬리


며칠 전 인터넷을 떠돌다 재미난 글을 하나 발견하였습니다. 전주에서 원어민 강사를 하고 있는 한 호주 여성이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로, 제목은 "한국인은 왜 외국인을 두려워할까?"입니다.

저도 잠시나마 영어강사 생활을 해본 사람이라 그런지,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아 소개를 드려볼까 합니다.

한국인은 왜 외국인을 두려워할까?

한국에서 길을 걷다 어린 아이들과 마주치면, 아이들은 이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곤 한다. 어느 정도 큰 아이들도 마찬가지고, 심지어는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다만, 어른들은 비명을 지르지는 않는다.) 한국에서 살면서 느낀 한 가지 이상한 점은, 길을 걷거나, 강둑을 거닐 때,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는 점이다. (호주에선 마주오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손을 흔들고, 미소지으며 인사를 하는 게 일반적이다.)

한국사람들은 왜 이럴까? 이곳 전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니, 아이들이 그다지 영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어는 학교에서 필수과목으로, 아이들은 그다지 쓸모도 없는 문장들을 반복해서 외운다던지, 복잡한 문법을 익힌다던지, 자주 치러지는 아주 어려운 시험준비를 하기 위해 굉장히 많은 양의 공부를 해야 한다. 이래가지고는 아이들이 영어를 싫어할 수밖에 없다.

내 생각에는, 문화와 언어의 장벽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컴퓨터가 등장하기 이전에도 우리는 영어로 펜팔같은 것을 하곤 했다. 나 역시도 영국과 미국, 필리핀, 그리고 호주에 많은 펜팔친구들이 있다. 하지만,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언어의 문제로 이렇게 적극적으로 세계 곳곳의 친구들과 소통해서, 영어와 친밀감을 가질 기회가 부족했던 것 같다.

뿌리깊은 유교문화 역시 하나의 장벽으로 작용한다. 엄격한 사회제도와 가족관계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이밖에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한국과 중국은 세계에서 영어공부에 투자하는 금액 대비 효율성이 가장 낮은 나라이다. 중국의 학생들은 약 12년에서 14년간 영어를 배우지만, 여전히 미숙하고 부정확하다.

하지만, 그들은 서구화된 (특히 미국화) 삶의 방식을 따라하고, 영어가 씌여진 옷을 즐겨입는다. 가령 어제 들렀던 식당의 웨이터는 "Drink, Pee, Repeat"라고 씌여진 셔츠를 입고 있었고, 내가 아는 한 학생도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곤 했다. 그들은 아마도 그저 내용도 모른채 단지 영어로 씌여진 옷을 입는 것이 '쿨'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같다.

그들은 정부와 학교에 의해 기만당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도 여기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같다. 한국은 곧 영어강사의 채용기준을 낮춘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부터 한국에서 영어강사로 일하기 위해서는 대학을 졸업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이런 조치는 아이들의 영어실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어려운 문법의 비중을 낮추고, '소통'을 중요시하는 환경을 만들어 아이들이 영어로 쉽게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지만, 그들은 이 방법을 시도하려 하지 않는 듯하다. 할 수 없는 것일까?

한국에 오신 지 얼마 안된 분이신 것 같은데, 글도 재미있게 잘 쓰시는 데다가, 한국 영어교육의 문제점을 꿰뚫고 계신듯하네요. 아마도 영어가 중요하니까 수업시간은 많이 잡아놨는데, 선생님들이 영어회화로 수업을 채울 수가 없으니, 그저 독해와 문법으로만 수업시간을 채우는 데에서부터 비극이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외국인 앞에서 꿀먹은 벙어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수업 중에 회화의 비중이 높아져야 하고, 현재 대한민국에는 회화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는 선생님이 별로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채용기준을 낮춰서라도 원어민 선생님을 유치하겠다는 방침은 언뜻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만, 정말 부적격자인 선생님들이 도리어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많아 걱정도 많이 됩니다.

아무튼, 이 분이 지적하고 계신 것과 같이 우리나라의 영어교육은 지나치게 영어를 학문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인간이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학습'이 아니라 '생활(모방)'에 기반하고 있는데, 학문이 아닌 것을 학문으로 공부하려하니 이래저래 고생을 할 수 밖에요.

저 개인적으로는 토플이나 토익같은 시험대비 공부는 한 적이 있습니다만, 따로 영어공부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는데요, 제가 영어공부한 비결은 간단합니다. 영어로 된 기사나 논문, 그리고 원서들을 많이 읽어보고, 미드 많이 봤습니다. 모르는 단어는 노트하나 만들어서 차근차근 정리했구요.

이게 하루이틀에 성과가 나오는 빠른 방법은 아닙니다만, 한 4년정도 이렇게 꾸준히 생활속에서 영어를 꾸준히 접했더니 저도 모르게 영어를 잘하게 되더군요. 얼마전에 무릎팍도사에서 안철수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어려운 방법이 최선"이었나 봅니다.

여러분은 혹시 '단기속성'을 너무 좋아하시진 않나요? 갓난 아이가 '엄마'라는 간단한 말을 입밖으로 꺼내는 데에도 1년이 걸린답니다. 단기간에 어떻게 요령껏 성과를 내겠다는 마음은 잠시 미뤄두시고 저처럼 우직하게 영어와 친해지시는 것은 어떨까요?

다음은 포스팅 원문입니다.

Why are Koreans afraid of foreigners?
Tuesday, 9 June 2009


It's true. They are scared. Little children go pale and some scream when the see me. (Not good for the ego!!!) School children are the same. Adults too. (But I've yet to have an adult scream!)One thing that I find very weird is that walking around the streets or on the river bank, no one speaks to you (unlike Australia, when we are likely to wave, smile and greet anyone who is walking towards us.) And we look them in the eye.

Why is this so? Here in Jeonju there are few foreigners anyway. So we are a "novelty". The only English speakers students know are their English Teachers and they don't necessary like them. They generally hate learning English. It is compulsory, requires a lot of "drill" work, repeating inane sentences, learning complicated grammar and frequent difficult examinations go with the territory. No wonder they don't like much English.

It is because of culture and language according to my observations. For a start English speakers have been used to communicating with people around the world. For years before computers came along, we would have pen friends and write in English. Many many letters ago, I had pen friends in the UK, America, Phillipines and in Australia. Language prevented Koreans or Chinese from doing the same. Their mailing systems were not as sophisticated as ours either, and both countries since the war have been very poor.

The Confucian philosophy has not helped either. Their strict cultural systems - and their strong family ties have also played a part in this.

These are some of the reasons that, despite the huge per capita expenditure on English language skills that these two countries are some of the worst in the world. Around 140 th in the world.

Chinese students learn English for 12 - 14 years and most are still functionally illiterate.

They "try" to be more western (American particularly) and wear clothes with English on them. Our waiter last night had on his shirt "Drink, Pee, Repeat" and a student had a t-shirt that described her in very unflattering terms. They don't read, nor understand, but feel they are "cool" in a shirt with English on it.

They are being taken for a ride - (as we Aussies would say) by their governments and their schools.

And no one is doing anything about it. Korea is about to reduce the requirements to be an English teacher in Korea - university degrees will no long be necessary to work here, but I think that won't help.

They must reduce the emphasis on grammar, and create a communicative learning enviroment where students learn to converse in English. They don't and they can't.

Posted by Di Hill at 5:59 PM

Link:
http://theadventurelady.blogspot.com/2009/06/why-are-koreans-afraid-of-foreigners.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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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왜 외국인을 두려워할까?  (0) 2009/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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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거신문을 제안합니다.

2009/06/23 00:30 | Posted by 벤자민 코넬리

비교적 최근에야 조중동의 '세뇌'에서 풀리다보니, '바른 언론'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한겨레, 경향, MBC가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그것만으로는 왠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건 왜일까요..

그러다 문득, 블로거신문이 있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는 사실 기성언론을 보기 전에 RSS리더에 등록해놓은 블로그들을 먼저 살펴봅니다. 정보입수 경로의 우선순위가 바뀐 것이지요. 아마도 많은 블로거님들도 그러시리라 생각합니다.

봄나무님의 포스팅을 토대로 대강 모습을 잡아보았습니다.



정말이지 '받아쓰기'만 잘하는 수준미달의 기사도 드물지 않은 요즘, 대단한 필력과 전문성으로 블로그를 운영하시는 많은 고수님들이 계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한편, 블로그로부터 창출되는 수익이 적어 블로깅을 주수입원으로 삼으시는 분은 극히 드물다는 것두요.

기본적인 생각은 2가지 입니다. "블로거들의 포스팅으로만 지면을 채운 블로거신문이 있으면 어떨까?"하는 것과, "우수한 포스팅에 금전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시스템을 만들어보자!" 는 것입니다.

현재 오마이뉴스에서 '좋은 기사 원고료'라는 방식으로 우수한 기사에 금전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시스템을 운영중이던데, 여기서 보다 나아가 지면광고로 얻어지는 수입에서 최소한의 운영비용을 제한 금액을 포스팅을 할애해주신 블로거님들께 돌려드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오마이뉴스 좋은기사 원고료 집계표, 2009년 6월 22일자


사실 뒷북일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되긴 합니다만, 어지간한 기사는 거의 재탕, 삼탕에 절반은 광고로 들어찬 무가지에 비해, 훨씬 읽을 거리도 많고, 호응도 좋을 거라 생각되는데요. 기사선정은 독자의 추천수를 기반으로 한 열린편집자방식을 기반으로 하되, 중요한 포스팅은 편집자의 재량도 발휘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뭐 그럼 편집자는 누가 할 것이냐? 무가지로 할 것이냐 유가지로 할 것이냐? 발행간격은 일간으로 할 것이냐? 주간으로 할 것이냐? 수익배분구조는 어떻게 가져갈 것이냐? 포스팅의 내용으로 인해 법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등등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겠지만, 이러한 문제들은 정말로 이 '블로거신문'이 추진된 이후에 참여하시는 블로거님들과의 협의를 거쳐 결정하면 될 문제인 듯 싶구요,

아무튼, 최소한의 운영경비(인쇄비+편집인력)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블로거님들께 돌려드린다면 현재 개별 블로그로 유치하는 광고가 가져다주는 수익에 비해 훨씬 나은 보상을 받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누가 압니까? 블로거 신문이 조중동을 누르고 발행부수 1위 신문이 될지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P.S: 위의 신문이미지를 봄나무님의 지난 6월 4일자 포스팅을 기반으로 만들어보았는데, 혹시라도 봄나무님께서 불쾌하시면 바로 내용을 바꾸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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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盧-死 후폭풍'짙게 드리워진 위기의 한국

    2009/06/23 17:46 | TRACKED FROM 자유인

    &lt;데스크 칼럼&gt; -김기홍 경제부장- 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치권에 불어 닥친 ‘盧 후폭풍’이 극단적 대결구도 양상으로 변환되고 있어 우려가 크다. 그의 죽음이 청와대 및 여권의 일방 외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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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JECT 블로그의 미래, 메타블로그에 달려있다

    2009/06/25 23:59 | TRACKED FROM Through the Migojarad

    앞에서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했다면, 이제는 현실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민노씨가 진단한데로, 블로그는 현재 더 이상의 미래가 없다는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수십번 반복된 이야기이지만, 한국의 웹환경은 분명 기형적입니다. 네이버나 다음이라는 포털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국의 웹환경은 철저히 포털 의존적입니다. 그 어느것도 포털 없이는 힘들고, 포털이 해서 실패하는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블로그도 그렇습니다. 블로그도 이제는 포털 없이는 아무것도 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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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ㅁㅁ 2009/06/29 23:07

    코멘트 금지도 아닌데 이렇게 좋은 글들에 왜 답변 하나 없는 것인지.. 트랙백 타고 넘어와서 구경하다 너무 이상해서 댓글 하나 남겨봅니다.

    • 칭찬 감사합니다. 블로그를 오픈한 지 얼마 안되서 찾아오시는 분이 얼마 안계시네요~ ^^;;; 부득이하게 트랙백을 난사했는데 역시 좋은 블로그가 되기 위해선 좋은 포스팅이 많아야 되나 봅니다.

  2. 2009/07/01 00:31

    비밀댓글입니다

  3. 성우제 2009/11/30 16:01

    또 한번 기분 좋아서 웃게 됩니다. 제 글이 이곳에... 하하.
    제가 봄나무였거든요. 어떻게 저 글을 찾으셨는지 모르겠네요.

    • 제가 캐나다 이민을 준비하던 중에 우연히 성우제님의 '캐나다 땅에서도 추방되는 한국 빈민들'이라는 포스팅을 보게 되었고, 이후로 RSS 등록해서 꾸준히 구독하고 있었답니다. 나름 열독자랄까요 ㅎㅎ 게다가 캐나다 이민선배이시기도 하고.. 덕분에 좋은 글 보며 도움 많이 받았죠. 이 기회를 빌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4. 마시간도사 2009/11/30 16:11

    하 하 강호의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법...
    성우제님,벤자민 코넬리님 두분 모두 진정한 고수 이십니다. (포권의 예를 ..)

불편한 진실과 노무현

2009/06/08 22:42 | Posted by 벤자민 코넬리

우스갯소리로 이명박 당선자 압승의 일등 공신은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한다. 사실 대선 결과가 알려지자마자 언론은 노대통령에 대한 '응징'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이번 대선은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호불호보다 노 대통령에 대한 증오가 선거 결과를 갈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권이 BBK 등을 통해 이 후보의 대통령으로서의 자질 공방에 아무리 불을 지펴 보려고 해도 국민들은 끄떡도 안 했다. 노 대통령을 응징할 수만 있다면 막대기를 꽂아 놓아도 뽑을 수 있다는 태도였다.

사람들이 왜 이토록 노무현을 증오하는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그가 박정희나 전두환처럼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것도 아니고, 천문학적인 돈을 해먹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김영삼처럼 나라 살림을 거덜낸 것도 아니다. 대선기간 동안 후보들이 이구동성으로 경제를 살리겠다고 목청을 높였지만 우리 경제가 왕창 죽어버린 것은 아니다. 거시경제의 지표는 좋아졌다.

양극화와 부동산 실책을 든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실책이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공도 많았다. 정치 사회부문의 권위주의는 사라졌고 지난 5년 동안 국가의 기본과 기업체질을 튼튼히 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성장의 잠재력을 많이 축적시켜 놓았다. 과거보다는 대외 신인도가 많이 높아져 수출시장에서도 주식 시장에서도 그 결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 돈 적게 드는 선거도 이뤘다.

그러니 단순히 실책만으로 정도를 넘어서는 증오를 설명하기는 무언가 부족하다. 노대통령에 대한 비난 이상의 증오, 살기마저 느껴지는 분노는 그가 우리 역사의 잊고 싶은 그 역린(逆鱗)을 끊임없이 들추면서 우리를 괴롭혀 온 데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은 집권 5년 동안 보기 싫은 진실, 이른바 '불편한 진실'을 보도록 끊임없이 들추어 왔다.

그 문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친일 청산의 문제이고, 그것에 기생하고 있는 대한민국 지배계층의 정통성의 문제이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왜곡된 의식의 문제이다. 그것이 실타래처럼 얽혀서 이념 문제가 되고 남북 문제가 되어 우리의 발목을 꼼짝달싹 못하도록 만들어 왔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쉬쉬하는 침묵의 카르텔이었다.

노무현 집권으로 그 카르텔에 금이 가면서 목하 대한민국의 지배계층의 기원과 본성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되었고 그 과정에 지배계층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특단의 조치까지 감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탄핵에서 다시 살아났지만 그때부터 노무현은 고립되었고, 여당조차도 더 이상 아군이 아니었다.

정동영의 실용주의는 바로 그 이탈의 신호탄이었다. 사실 여당이라 해도 아군인 척은 했지만 아군인 적은 없었다. 그들도 엄연한 지배계층이었고 침묵의 카르텔의 일원이었다. 대선에 패배하고 난 뒤 모두가 노무현 탓이라고 손가락질 하는 태도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정·언·관의 융단 폭격 속에 민심의 이반도 함께 일어났다. 왕조 시대라면 이미 탄핵으로 반정(反正)이 완성된 것이다.

불편한 진실은 지배계층 만의 문제도 아니다. 사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노무현 자신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는 역사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다. 그 어두운 과거, 그 불편한 진실을 가능하면 대면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끊임없이 대면시키고 그래서 우리의 심기를 건드려 온 것 그것이 노무현 정부 5년의 일이었다. 그것을 없는 듯이 덮고 그 위에 무엇을 쌓아도 결국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이 그의 신념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한두 번도 아니고 자꾸만 들추어내는 그 불편한 진실은 모두의 울화통을 터지게 했다.

이명박 정부의 출현은 불편한 진실을 이제 그만 덮자는 선택으로 보인다. 정치 경제 사회에서 실용을 앞세워 민생을 살리겠다는 이명박 당선자의 입장은 "이제 좀 조용히 살고 싶다. 입 좀 다물고 돈만 좀 벌게 해 주라"는 다수의 요구와 잘 부합한다.

어두운 진실을 밝은 햇빛 속에 드러내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노무현 정부 5년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지금은 모든 것이 퇴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단지 순탄한 대한민국호의 순항을 위해 호흡조절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세속적 정치가이면서 성직자나 학자들조차 감히 하지 못한 진실에 대한 열정과 도전으로 "임금님이 발가벗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역사는 그를 잊지 않을 것이다

2007년 12월 28일
김미선 국제신문 수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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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래 노무현 대통령을 무척이나 싫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그 분을 싫어하게 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들이 구속되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후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자녀분들이 별것도 아닌 일로 감옥에 가다니 개탄할 일이다"

제 기억력에 바탕을 두고 하는 얘기니까 정확하게 옮긴 건 아닐지라도 "별것도 아닌 일"이란 말은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그때 생각으로는, 대통령의 친인척이 뇌물을 받은 것을 "별것도 아닌 일"로 생각하는 사람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서는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거기다 제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던 국민연금과 민자사업 분야에서는 솔직히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민연금은 지난 1999년 국민의 정부 시절에 전국민 강제가입으로 바뀐 이래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왔습니다. 특히 영세자영업자들에게 유독 가혹했었지요. 명분은 전국민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 속을 들여다보면 정부가 마음대로 가져다쓸 수 있는 또다른 세금에 불과하며, 당초 취지와는 달리 노후 소득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주범이라는 점에서 저는 국민연금의 전면 개혁을 강력하게 주장해왔습니다.

국민연금이 엉뚱한 곳에 사용된 대표적인 케이스로는 공기수송열차라고도 불리는 '인천공항고속철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만들어지지 말았어야 할 철도가 어떤 알 수없는 이유에 의해서 건설되었고, 이용객이 적어 적자가 발생하자 정부가 세금으로 그 적자를 메워주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국민연금은 왜 인천공항철도에 2500억을 투자했나? 참조바랍니다.)

이런 류의 '이상한 민자사업'이 참여정부 기간에 상당히 많이 착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지난 2009년 4월 14일과 4월 21일 KBS 1TV 시사기획 쌈에서 방영된 황금알 민자사업을 참조바랍니다.)

사실 대부분 서울시, 광주시 등 각 지방자치단체가 주체가 된 일이라 화살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돌리기는 좀 애매한 사항이었는데, 당시에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최면에 걸려서인지 이 모든 부조리의 근원이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라는 생각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특히 국민연금 깍지 않겠다는 대선공약을 당선 이듬해에 뒤집은 점, 국민연금의 전면적인 개혁이 아닌, 땜질식 처방으로 고갈시점만 늦추려 한 점은 저에게 무척이나 무책임하게 보였습니다. 사실 제가 이민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노무현 대통령 치하의 대한민국이 너무 싫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겪고 나서 저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답니다. 사람은 실수를 하게 마련이며, 대통령 또한 사람일 뿐이고, 대한민국이란 톱니바퀴의 한 톱니일 뿐이라고, 비록 제 마음에 들지 않은 점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모두 그분의 책임은 아니며, 오히려 눈을 돌려 잘하신 것을 찾아보면 잘못하신 것보다 잘하신 것이 훨씬 많은 분이셨다고... 뒤늦게 반성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이지 '세뇌가 풀렸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충격이었습니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2007년 대선에서 국민들이 더 이상 민주주의의 진전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을만큼 참여정부 5년간, 민주주의를 많이 발전시켜주셨고, 조선왕조 600년의 전통을 못벗어나고, 아직도 대통령과 왕을 동일시하는 구세대의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대통령 또한 국민의 선택을 받는 국민의 종일 뿐이라는 메시지도 강력하게 전달해주셨습니다.

게다가,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자신이 잘못한 일이라도 재임5년간의 일들은 하나하나 모두 기록으로 남겨 후대의 평가를 받고자 하셨으며, 마음만 먹으면 칼(사정기관)을 뽑아 휘두를 수 있는데도 칼을 칼집에서 뽑지 않는 용기를 보여주셨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대통령도 인간이고,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비주류출신이라는 한계로 인해, 재임5년간 무수히도 많은 기득권의 견제속에서 일을 추진해야만 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그분이 이루어내신 많은 일들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그분을 미워했던 많은 이유들도 이제와 생각해보니 제 나름대로 그 분이 전지전능하실 거라고 멋대로 정해놓고,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고 미워했던 것 같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요.

참여정부 5년, 분명 잘못된 것도 있고, 잘된 것도 있을 것입니다. 부동산정책 등에서 잘못된 게 있다면, 탈권위주의, 균형발전, 민주주의발전 등은 잘된 점이겠지요. 저는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잘못하신 것보다는 잘하신 것이 많았다고 생각되더군요. 이제는 그분의 업적이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사람은 밥만으로 사는 것이 아닐진데, 너무 경제,경제 해왔던 게 아닐까 반성도 되구요. 돈을 도대체 얼마를 벌어야 행복해질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갖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이미 상당한 경제강국인데도, 국민들은 경제가 어렵다며 정권을 바꾸었습니다. 아마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 되기 전까지 이런 갈증은 끝이 나지 않을 듯 싶습니다. 어쩌면 끝이 안날지도 모르죠. 물질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노무현대통령은 황금만능주의에 빠져든 빈곤한 시민의식에 큰 깨우침을 주신 분입니다. 대한민국이 5년임기의 전제군주가 지배하는 왕국이 아닌, 국민이 권력의 원천인 민주주의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반칙과 편법이 아닌 정정당당한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것을 위해 성숙한 시민의식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알려주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02년, 어느 신문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에 대한 설문을 했는데 1위가 '히딩크'였다고 합니다. 그걸 보고 '우리나라에 얼마나 존경할만한 사람이 없으면, 외국인이 1위를 다 했을까' 싶어 한숨을 쉬었답니다. 그러나 이제 제 마음 속엔 한 분이 생겼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섰으면서도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원칙을 지키느라 바보소리를 들어야 했던 '바보 노무현'이...

비록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셨지만, 진정 존경할만한 대통령이셨고, 존경할만한 정치인의 등장은 분명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치에 대한 환멸을 이겨내고 보다 성숙된 시민의식을 갖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좁은 소견으로 위대한 분의 큰 뜻을 몰라보고 조급하고 순진하고 어리석은 마음으로 한때 대통령님을 원망했던 제가 정말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정말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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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고공비상 2009/06/22 01:03

    근거있는 내용으로 '비판적 지지'를 해주신 것이 인상적입니다.
    그 누구든 절대선, 절대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 그 날선 비판을 해주실 때 민주주의와 더불어 경제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절대선, 절대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말씀이 참 와닿습니다. 너무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갇혀 '모 아니면 도' 식으로 함부로 사람을 재단하고 평가해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있습니다.

      '나랑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 = '나쁜 놈'으로 단정해서는 올바른 민주주의 시민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나와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토론을 통해 서로 간의 입장차이를 좁혀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이 올바른 민주주의 시민이 아닐까 합니다.

      교과서적인 말이긴 하나, 온몸으로 이 말에 공감하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2. 2009/06/22 01:26

    비밀댓글입니다

    • 저 역시 이라크파병이나 한미FTA에는 반대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작 본인께서도 이라크파병, 한미FTA 하고 싶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대통령기록물은 30년간 비공개로 보관되니, 대통령의 생각은 앞으로 한참 뒤에야 알 수 있겠지만, 노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문재인 실장님도 끝까지 반대하셨던 정책이 상당히 많으셨다하니, 본인도 정말 하기 싫으셨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익을 위해 피치못한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요?

      만약 이라크파병을 하지 않았다면, 대북강경책을 고집하는 미국의 매파들을 달래줄 명분을 쌓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미FTA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구요.

      1997년 IMF의 근본적인 원인이 김영삼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무시하고 금융을 개방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미국의 보복조치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도 있는 걸로 압니다.

      그쪽에서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에 이쪽이 먼저
      손을 씀으로써 손도 못쓰고 은행을 털려야 했던 10년 전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하셨던 것은 아닐까요?

      전 이제 모든 것이 새롭게 보입니다. 물론, 무조건적인 찬양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만,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을 즐기셨던 분이신 만큼, 설령 지금 제 눈에 탐탁치 않은 일을 하셨더라도 뭔가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 믿습니다.

  3. 대구,대우인 2009/06/22 01:49

    저도 저 나름의 이유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싫어하고,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이전 대통령들을 지지하거나
    현 대통령을 사람취급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 정권에서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지난 10년간을 맡아주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짙어지고
    지지를 함에 있어 더욱 편안해지고 있습니다.

    현 정부는 평범한 시민을 투사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40대초반이나 된 제가 벌써 1년여 세월을
    이렇게 헛되이 보내게 만든 걸 보면 정말 문제 있습니다.
    (미쇠고기 수입 협상 이후 각종 뉴스에서 눈 못 떼고 있습니다.)

    •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계신 듯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허위과장광고에 의한 폐해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허위과장광고임을 간파했으면 참 좋았겠습니다만, 아직은 그것을 걸러낼 제도적 장치도, 시민의식도 부족한 것이 현실인가봅니다.

      그나마 이번 기회에 저처럼 '세뇌'에서 풀린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요. 꼭 이렇게 후회할 일이 생기고 나서야 반성하는 제 자신이 너무나 한심합니다만, 그래도 앞으로는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4. jihzorba 2009/06/22 10:18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모든 세상일들을 판단할 때
    잘잘못을 함께 따져 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후회가 듭니다.
    저처럼 부산이란 지역적, 나이 50넘은 보수적 편견 때문에
    많은 세월 동안 그 양반을 비난해 마지 않았습니다.

    진실을 깨닫게 된 지금에서야 스스로의 무지함에 창피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 아마 한번이라도 그분께 손가락질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창피함을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은 이미 벌어졌고, 남기고 가신 일을 깨끗하게 마무리 짓는 것이 남겨진 이들의 몫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분이 추구하셨던 소중한 가치들이 실현될 수 있도록, 그래서 지금의 창피함을 씻어낼 수 있도록, 불의에 맞서는 용기, 불의에 현혹되지 않는 안목을 갖춰야될 것 같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양심'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5. 성우제 2009/11/30 13:56

    하하. 읽으면 읽을수록 궁금해집니다. 한국에서 뭘 하셨던 분인가 하는...
    솜씨를 보아하니 글쓰기 아마추어는 아니신 듯하여...
    제 성격이 급한 편이라 궁금하면 못 참습니다.

    괜찮으시면 메일 한번 주시겠어요?

    bomnamoo@gmail.com

    저는 토론토 노스욕에 살고 있습니다만...


이명박 대통령님,
기록 사본은 돌려드리겠습니다.

사리를 가지고 다투어 보고 싶었습니다.
법리를 가지고 다투어 볼 여지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열람권을 보장 받기 위하여 협상이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버티었습니다.

모두 나의 지시로 비롯된 일이니 설사 법적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내가 감당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퇴직한 비서관, 행정관 7-8명을 고발하겠다고 하는 마당이니 내가 어떻게 더 버티겠습니까?
내 지시를 따랐던, 힘없는 사람들이 어떤 고초를 당할지 알 수 없는 마당이니 더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모두 내가 지시해서 생겨난 일입니다. 나에게 책임을 묻되, 힘없는 실무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은 없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록은 국가기록원에 돌려 드리겠습니다.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 하나만큼은 전통을 확실히 세우겠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먼저 꺼낸 말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한 끝에 답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한 번도 아니고 만날 때마다, 전화할 때마다 거듭 다짐으로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자존심이 좀 상하기도 했으나 진심으로 받아들이면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은근히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저번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보도를 보고 비로소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때도 전직 대통령 문화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부속실장을 통해 연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처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어서 다시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몇 차례를 미루고 미루고 하더니 결국 '담당 수석이 설명 드릴 것이다'라는 부속실장의 전갈만 받았습니다.
우리 쪽 수석비서관을 했던 사람이 담당 수석과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내가 처한 상황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전직 대통령은 내가 잘 모시겠다.
이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 만큼, 지금의 궁색한 내 처지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내가 오해한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오해해도 크게 오해한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가다듬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록은 돌려 드리겠습니다.
가지러 오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보내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통령기록관장과 상의할 일이나 그 사람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국가기록원장은 스스로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결정을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본 것도 보았다고 말하지 못하고, 해 놓은 말도 뒤집어 버립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상의 드리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기록을 보고 싶을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천리길을 달려 국가기록원으로 가야 합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정보화 시대에 맞는 열람의 방법입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전직 대통령 문화에 맞는 방법입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앞으로 그렇게 하실 것입니까?
적절한 서비스가 될 때까지 기록 사본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 정말 큰일이 나는 것 맞습니까?

지금 대통령 기록관에는 서비스 준비가 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까?
언제 쯤 서비스가 될 것인지 한 번 확인해 보셨습니까?

내가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나의 국정 기록을 내가 보는 것이 왜 그렇게 못마땅한 것입니까?

공작에는 밝으나 정치를 모르는 참모들이 쓴 정치 소설은 전혀 근거 없는 공상소설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기록에 달려 있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우리 경제가 진짜 위기라는 글들은 읽고 계신지요? 참여정부 시절의 경제를 '파탄'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지금 이 위기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은 대통령의 참모들이 전직 대통령과 정치 게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 싸움에서 물러섭니다.

하느님께서 큰 지혜를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2008년 7월 16일
16대 대통령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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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추모동영상

2009/05/26 21:45 | Posted by 에이미 코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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