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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래 노무현 대통령을 무척이나 싫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그 분을 싫어하게 된 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들들이 구속되던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민주당 대통령후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자녀분들이 별것도 아닌 일로 감옥에 가다니 개탄할 일이다"

제 기억력에 바탕을 두고 하는 얘기니까 정확하게 옮긴 건 아닐지라도 "별것도 아닌 일"이란 말은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그때 생각으로는, 대통령의 친인척이 뇌물을 받은 것을 "별것도 아닌 일"로 생각하는 사람이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서는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거기다 제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던 국민연금과 민자사업 분야에서는 솔직히 분통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민연금은 지난 1999년 국민의 정부 시절에 전국민 강제가입으로 바뀐 이래로 많은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왔습니다. 특히 영세자영업자들에게 유독 가혹했었지요. 명분은 전국민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것이라고 했지만, 사실 속을 들여다보면 정부가 마음대로 가져다쓸 수 있는 또다른 세금에 불과하며, 당초 취지와는 달리 노후 소득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주범이라는 점에서 저는 국민연금의 전면 개혁을 강력하게 주장해왔습니다.

국민연금이 엉뚱한 곳에 사용된 대표적인 케이스로는 공기수송열차라고도 불리는 '인천공항고속철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만들어지지 말았어야 할 철도가 어떤 알 수없는 이유에 의해서 건설되었고, 이용객이 적어 적자가 발생하자 정부가 세금으로 그 적자를 메워주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국민연금은 왜 인천공항철도에 2500억을 투자했나? 참조바랍니다.)

이런 류의 '이상한 민자사업'이 참여정부 기간에 상당히 많이 착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지난 2009년 4월 14일과 4월 21일 KBS 1TV 시사기획 쌈에서 방영된 황금알 민자사업을 참조바랍니다.)

사실 대부분 서울시, 광주시 등 각 지방자치단체가 주체가 된 일이라 화살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돌리기는 좀 애매한 사항이었는데, 당시에는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최면에 걸려서인지 이 모든 부조리의 근원이 노무현 대통령 때문이라는 생각에 푹 빠져있었습니다.

특히 국민연금 깍지 않겠다는 대선공약을 당선 이듬해에 뒤집은 점, 국민연금의 전면적인 개혁이 아닌, 땜질식 처방으로 고갈시점만 늦추려 한 점은 저에게 무척이나 무책임하게 보였습니다. 사실 제가 이민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노무현 대통령 치하의 대한민국이 너무 싫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를 겪고 나서 저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답니다. 사람은 실수를 하게 마련이며, 대통령 또한 사람일 뿐이고, 대한민국이란 톱니바퀴의 한 톱니일 뿐이라고, 비록 제 마음에 들지 않은 점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모두 그분의 책임은 아니며, 오히려 눈을 돌려 잘하신 것을 찾아보면 잘못하신 것보다 잘하신 것이 훨씬 많은 분이셨다고... 뒤늦게 반성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이지 '세뇌가 풀렸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충격이었습니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2007년 대선에서 국민들이 더 이상 민주주의의 진전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을만큼 참여정부 5년간, 민주주의를 많이 발전시켜주셨고, 조선왕조 600년의 전통을 못벗어나고, 아직도 대통령과 왕을 동일시하는 구세대의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대통령 또한 국민의 선택을 받는 국민의 종일 뿐이라는 메시지도 강력하게 전달해주셨습니다.

게다가, 다른 대통령들과 달리, 자신이 잘못한 일이라도 재임5년간의 일들은 하나하나 모두 기록으로 남겨 후대의 평가를 받고자 하셨으며, 마음만 먹으면 칼(사정기관)을 뽑아 휘두를 수 있는데도 칼을 칼집에서 뽑지 않는 용기를 보여주셨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대통령도 인간이고, 능력에는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더구나 비주류출신이라는 한계로 인해, 재임5년간 무수히도 많은 기득권의 견제속에서 일을 추진해야만 했던 점을 감안한다면, 그분이 이루어내신 많은 일들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그분을 미워했던 많은 이유들도 이제와 생각해보니 제 나름대로 그 분이 전지전능하실 거라고 멋대로 정해놓고, 거기에 미치지 못한다고 미워했던 것 같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요.

참여정부 5년, 분명 잘못된 것도 있고, 잘된 것도 있을 것입니다. 부동산정책 등에서 잘못된 게 있다면, 탈권위주의, 균형발전, 민주주의발전 등은 잘된 점이겠지요. 저는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잘못하신 것보다는 잘하신 것이 많았다고 생각되더군요. 이제는 그분의 업적이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사람은 밥만으로 사는 것이 아닐진데, 너무 경제,경제 해왔던 게 아닐까 반성도 되구요. 돈을 도대체 얼마를 벌어야 행복해질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갖게 되었습니다.

한국은 이미 상당한 경제강국인데도, 국민들은 경제가 어렵다며 정권을 바꾸었습니다. 아마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이 되기 전까지 이런 갈증은 끝이 나지 않을 듯 싶습니다. 어쩌면 끝이 안날지도 모르죠. 물질에 대한 욕망은 끝이 없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노무현대통령은 황금만능주의에 빠져든 빈곤한 시민의식에 큰 깨우침을 주신 분입니다. 대한민국이 5년임기의 전제군주가 지배하는 왕국이 아닌, 국민이 권력의 원천인 민주주의공화국이라는 사실을,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반칙과 편법이 아닌 정정당당한 삶의 방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그것을 위해 성숙한 시민의식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알려주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02년, 어느 신문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에 대한 설문을 했는데 1위가 '히딩크'였다고 합니다. 그걸 보고 '우리나라에 얼마나 존경할만한 사람이 없으면, 외국인이 1위를 다 했을까' 싶어 한숨을 쉬었답니다. 그러나 이제 제 마음 속엔 한 분이 생겼습니다.

권력의 정점에 섰으면서도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원칙을 지키느라 바보소리를 들어야 했던 '바보 노무현'이...

비록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셨지만, 진정 존경할만한 대통령이셨고, 존경할만한 정치인의 등장은 분명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치에 대한 환멸을 이겨내고 보다 성숙된 시민의식을 갖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좁은 소견으로 위대한 분의 큰 뜻을 몰라보고 조급하고 순진하고 어리석은 마음으로 한때 대통령님을 원망했던 제가 정말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정말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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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고공비상 2009/06/22 01:03

    근거있는 내용으로 '비판적 지지'를 해주신 것이 인상적입니다.
    그 누구든 절대선, 절대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국민이 주인인 대한민국. 그 날선 비판을 해주실 때 민주주의와 더불어 경제대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절대선, 절대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말씀이 참 와닿습니다. 너무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갇혀 '모 아니면 도' 식으로 함부로 사람을 재단하고 평가해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있습니다.

      '나랑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사람' = '나쁜 놈'으로 단정해서는 올바른 민주주의 시민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나와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토론을 통해 서로 간의 입장차이를 좁혀 갈등을 최소화하는 것이 올바른 민주주의 시민이 아닐까 합니다.

      교과서적인 말이긴 하나, 온몸으로 이 말에 공감하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2. 2009/06/22 01:26

    비밀댓글입니다

    • 저 역시 이라크파병이나 한미FTA에는 반대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정작 본인께서도 이라크파병, 한미FTA 하고 싶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대통령기록물은 30년간 비공개로 보관되니, 대통령의 생각은 앞으로 한참 뒤에야 알 수 있겠지만, 노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문재인 실장님도 끝까지 반대하셨던 정책이 상당히 많으셨다하니, 본인도 정말 하기 싫으셨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익을 위해 피치못한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요?

      만약 이라크파병을 하지 않았다면, 대북강경책을 고집하는 미국의 매파들을 달래줄 명분을 쌓지 못했을 것입니다. 한미FTA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구요.

      1997년 IMF의 근본적인 원인이 김영삼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무시하고 금융을 개방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미국의 보복조치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도 있는 걸로 압니다.

      그쪽에서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오기 전에 이쪽이 먼저
      손을 씀으로써 손도 못쓰고 은행을 털려야 했던 10년 전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하셨던 것은 아닐까요?

      전 이제 모든 것이 새롭게 보입니다. 물론, 무조건적인 찬양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만,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을 즐기셨던 분이신 만큼, 설령 지금 제 눈에 탐탁치 않은 일을 하셨더라도 뭔가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 믿습니다.

  3. 대구,대우인 2009/06/22 01:49

    저도 저 나름의 이유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싫어하고,
    또 노무현 전 대통령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이전 대통령들을 지지하거나
    현 대통령을 사람취급하는 것은 아닙니다.

    현 정권에서의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지난 10년간을 맡아주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짙어지고
    지지를 함에 있어 더욱 편안해지고 있습니다.

    현 정부는 평범한 시민을 투사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40대초반이나 된 제가 벌써 1년여 세월을
    이렇게 헛되이 보내게 만든 걸 보면 정말 문제 있습니다.
    (미쇠고기 수입 협상 이후 각종 뉴스에서 눈 못 떼고 있습니다.)

    •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계신 듯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허위과장광고에 의한 폐해를 온몸으로 체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애초에 허위과장광고임을 간파했으면 참 좋았겠습니다만, 아직은 그것을 걸러낼 제도적 장치도, 시민의식도 부족한 것이 현실인가봅니다.

      그나마 이번 기회에 저처럼 '세뇌'에서 풀린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겠지요. 꼭 이렇게 후회할 일이 생기고 나서야 반성하는 제 자신이 너무나 한심합니다만, 그래도 앞으로는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4. jihzorba 2009/06/22 10:18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모든 세상일들을 판단할 때
    잘잘못을 함께 따져 보아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후회가 듭니다.
    저처럼 부산이란 지역적, 나이 50넘은 보수적 편견 때문에
    많은 세월 동안 그 양반을 비난해 마지 않았습니다.

    진실을 깨닫게 된 지금에서야 스스로의 무지함에 창피한 마음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 아마 한번이라도 그분께 손가락질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 창피함을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은 이미 벌어졌고, 남기고 가신 일을 깨끗하게 마무리 짓는 것이 남겨진 이들의 몫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분이 추구하셨던 소중한 가치들이 실현될 수 있도록, 그래서 지금의 창피함을 씻어낼 수 있도록, 불의에 맞서는 용기, 불의에 현혹되지 않는 안목을 갖춰야될 것 같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대로 '행동하는 양심'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5. 성우제 2009/11/30 13:56

    하하. 읽으면 읽을수록 궁금해집니다. 한국에서 뭘 하셨던 분인가 하는...
    솜씨를 보아하니 글쓰기 아마추어는 아니신 듯하여...
    제 성격이 급한 편이라 궁금하면 못 참습니다.

    괜찮으시면 메일 한번 주시겠어요?

    bomnamoo@gmail.com

    저는 토론토 노스욕에 살고 있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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