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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해방의 아버지, 윌리엄 윌버포스

2009/11/11 11:49 | Posted by 벤자민 코넬리

윌버포스의 생애를 그린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


한참 국민연금과의 투쟁을 이어나가던 무렵, 제 다큐멘터리를 본 어떤 대학생이 저에게 메일을 보내와 이 영화를 권해주었습니다. 200년 전에도 어떤 남자가 나쁜 제도와 싸워 결국 그 제도를 무너뜨리고 승리를 거두었다며, 저에게 용기를 잃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지요.

그 친구에게 미안하게도 저는 마지막으로 한번 온힘을 다해 제가 3년간 수집했던 자료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책을 한권 낸 뒤, 그 싸움에서 물러나 이곳 캐나다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 실제로 노예무역이라는 나쁜 제도를 폐지해냈던, 그래서 영국 사회에 바람직한 변화를 가져왔던, 한 남자의 위대한 삶을 보며, 저에게 부족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돌아볼 수 있는 좋은 반성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Amazing Grace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찬송가에서 따온 것이라고 하던데,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저는 그 노래가 노예해방과 관계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죠. 참고로, 찬송가 Amazing Grace의 가사는 한때 노예 무역을 하다가 참회하여 목사가 된 존 뉴튼 (John Newton)이라는 영국사람이 만든 찬송가 제목입니다. 존 뉴튼은 1748년 그레이하운드 (Greyhound)라는 노예무역선을 타고 있었는데 폭풍우가 몰아치고 그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을 때 하나님을 찾으면서 회개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훗날 목사가 된 뉴튼은 윌버포스를 도와 노예무역 반대운동에 동참하게 됩니다.

노예해방, 하나님이 주신 '사명'

1787년 10월 28일, 28세의 젊은 영국 하원의원 윌리엄 윌버포스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내 일생을 바쳐 완수해야 할 두 가지 사명을 주셨다. 하나는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영국 사회의 악습을 개혁하는 일'이다."

당시 영국은 세계 최고의 해상 국가였다. 2백만 명의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북아메리카로 실어 나르며 영국이 벌어들인 수입은 당시 국가의 수입 중 1/3을 차지했다. 거기에 노예산업으로 인한 선원 고용효과와 선박 수요도 영국 경제에 큰 몫을 하고 있었다.

윌버포스는 이런 영국의 세태에 대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당당히 맞섰다. 그는 "영국이 진정 위대한 나라가 되고 싶다면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하는데, 노예제도는 하나님을 자극하는 일"이라며 노예제도 지지파를 비판했다.

그는 150회의 대국회 논쟁은 물론 탄원서 제출운동, 설탕 불매운동, 책자 출판 등 대중 여론을 조성하는 방법으로 노예제도 폐지운동을 전개했다. 그는 노예제도 지지자들에게서 온갖 중상모략과 비방, 두 차례의 암살시도 등에도 절대 굴하지 않고, 뜻있는 목사들과 평신도 리더들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의 믿음을 더욱 굳게 지켰다.

감리교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도 윌버포스의 열정에 감복해 1791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누가 그대와 맞서 싸울 수 있겠는가?" 하는 편지를 보내 그를 격려했다.

"사명 다하고 죽으니 감사할 뿐"

이렇게 뜻을 굽히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완수하려고 노력한 결과, 윌리엄 윌버포스는 영국 노예해방의 아버지가 됐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사회 악습을 타파하는 데 온 생애를 바쳐 '영국의 양심'이라는 호칭을 얻었다.

윌버포스의 오랜 투쟁 끝에 1807년 2월 23일, 영국 하원의회는 그에게 유례없는 찬사를 보내며 '노예무역폐지법'을 통과시켰다. 하나님의 법에 충실하려는 그의 노력이 사회 기득권층의 반발을 무너뜨리고 영국 역사에 새 이정표를 그은 것이다.

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나라, 영국'을 위해 달려 나갔다. 가난한 이들을 농락하던 복권을 폐지하고, 저소득층 무상의료지원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과다한 노동시간을 제한하는 '어린이노동 보호법'을 제정했다.

또한 상류사회 남자들의 '결투제도' 폐지에 앞장서 귀한 목숨을 지키려 노력했고, 호화 파티만 일삼던 귀족 부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이들이 여가시간을 사회봉사에 쓰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윌버포스의 노력은 1833년 7월 27일, 그가 하나님 앞에서 뜻을 세운지 46년만에 그 결실을 맺었다. 영국 의회가 노예제도 자체를 없애는 '노예제도 폐지법'을 의결한 것이다. 이 법안의 통과로 80만 명에 달하는 영국의 노예들이 자유를 얻게 됐다.

노예제도폐지법이 통과되고 불과 사흘 후, 하나님의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는 "영국이 노예제도를 통해 얻는 이득을 포기하는 날을 목도하고 죽게 하시니 하나님께 감사할 뿐"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중략)

윌버포스의 전 생애는 '하나님의 법에 충실한 삶'이라고 압축할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충실히 지켜나가는 것이 곧 나라를 살리는 길임을 말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는 헌신된 하나님의 사람 한 명이 부패한 사회에 얼마나 큰 빛을 비출 수 있는지에 대한 증거로 남았다.

또한 그의 영향으로 영국 젊은 정치가의 3분의 1이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됐다. 윌버포스의 전기를 지은 영국의 저널리스트 '가트 린'은 "한 사람의 맑은 영혼이 한 나라 전체를 바로 세울 수 있는 좋은 예"라고 적었다.
@이재영 뉴스미션 인턴기자 redin4u@naver.com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25세에 하원의원이 된 윌리엄 윌버포스가 영국에서 노예제도를 완전히 폐지하기 위해 들인 시간은 46년이었습니다. 물론 운동을 시작한지 20년만인 1807년에 이미 대세를 굳히는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 승리를 거두기 위해서도 20년이라는 시간을 걸렸던 것이지요.

그저그런 집안에서 태어나, 수도권 대학을 졸업하고, 23세의 대학생이었던 제가 국민연금제도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기 위해 들인 시간은 3년이었습니다. 사실 그 3년도 저에겐 엄청난 모험이었고, 결국엔 버티지 못하고 투쟁에서 발을 빼고 말았는데, 그래서인지 무려 46년간 신념을 지켜낸 윌리엄 윌버포스의 삶은 저에게 참으로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멋진 삶을 살다간 사람의 뒷모습은 왜 이리도 아름다운 것일까요. 저는 비록 윌버포스처럼 똑똑하지도 않고, 부유하지도 않지만, 그의 삶이 가리키는 방향이 옳다는 것은 확실히 알겠습니다. 이런 멋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그 친구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네요.


윌버포스의 생애를 그린 영화 <어메이징 그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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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2009/11/12 14:43

    살아있구나! ^^

  2. 2009/11/12 14:43

    살아있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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