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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자에 관대해야 미래가 열린다.

2009/07/03 12:13 | Posted by 벤자민 코넬리

저는 책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역사책을 좋아하지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역사속 인물들의 일대기를 보다보면 저도 모르게 손에 땀을 쥐고, 감탄을 연발하곤 합니다. 게다가 요즘은 세상이 좋아서 역사책인데도 지루하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써주시는 작가님들도 많아져서 책을 고를 때면 언제나 행복한 고민에 빠지곤 합니다.

그 중에서도 최고의 역사책을 꼽자면, 저는 단연코 「시오노 나나미」님의 「로마인 이야기」시리즈를 꼽습니다. 1년에 한 작품씩 15년에 걸쳐 15권의 시리즈를 완성시킨 작가의 치밀함과 열정은 책의 내용을 떠나서 그 노력의 양 만으로도 저를 숙연하게 만들곤 합니다.


로마인이야기 세트 (전15권)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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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로마인 이야기 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 1권을 다시 꼽자면,
바로 2권, 「한니발 전쟁」을 꼽을 수 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 2: 한니발 전쟁
카테고리 역사/문화
지은이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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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과 스키피오라는 명장들의 두뇌싸움은 물론이고, 로마가 위기에 처하자 한니발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똘똘뭉쳐 로마를 지켜낸 동맹도시들의 "끈끈함", 국고가 바닥나자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실천해 사재를 털어 국고를 채웠던 원로원 의원들... 정말이지 책장을 여는 순간부터 닫는 순간까지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전투에서 패배한 장수를 어떻게 처우하느냐에 대한 두 나라의 차이점이었는데요. 카르타고에서는 패장을 사형에 처한 반면, 로마에서는 패장이라도 다시 한번 만회할 기회를 주었죠.

저는 한니발과의 전쟁에서 로마가 결국에 승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이 "패장에게 관대했던 로마의 자세"였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한니발 전쟁을 승리로 이끈 많은 로마의 장군 중에는 패배를 딛고 일어나 큰 승리를 거둔 이들이 많았지요.

2권에 등장하는 장군 중에서는 "클라우디우스 네로"가 패배를 딛고 일어난 대표적인 케이스에 들어갑니다. 그는 한 때 적의 책략에 빠져 우물쭈물하다 적을 놓친 적이 있었으나, 몇년 뒤 보란듯이 바로 그때의 그 적을 섬멸하여 로마에 큰 공을 세운 장수입니다.

아마도 로마가 이처럼 패장에게 관대했던 데에는 "실수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웠을 것"이라는 믿음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이는 끊임없이 무엇인가 개선해나가려 했던 로마인의 기질과도 연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로마인의 기질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언제나 체계화하기를 좋아하지만, 또한 더 나은 방법에 대해서는 항상 열려있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실제로, 로마라는 사회 자체가 처음엔 왕정으로 시작하여, 공화정으로 갔다가 다시 왕정으로 돌아가는 "변화"를 겪었으며, 국가의 규모도 조그만 도시국가에서 지중해를 제패한 제국으로 "변화"해왔으며, 군사제도도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변화"하는 등, 끊임없이 변화를 겪은 사회였습니다.

이러한 로마인의 기질에서 "(모든 것이 변하는 만큼) 사람도 변할 수 있다"는 믿음이 태어나게 되었고, 이러한 믿음은 패배한 장군들에게도 패배를 만회할 "두 번째 기회"를 주어 결국 큰 성공을 얻어낸 것이 아닐까요? 더군다나 한니발 전쟁과 같이 장기전이면서도 전면전이어서 인적자원이 엄청나게 소모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패장을 계속 사형시켰다면 전쟁 자체가 불가능했을테죠.

반면, 패장을 사형에 처한 문화권에서는 "한번 패배한 장수는 또 다시 패배할 것이다." 즉,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을 테구요. 듣자하니 과거 용맹을 자랑하던 고구려에서도 패장을 사형에 처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죽을 각오로 싸우라"는 강력한 동기부여이기도 하지만, 전쟁이란 것이 사람이 하는 일만큼이나 하늘이 하는 일이 작용하는 만큼 단 한번의 패배만으로 유능한 장수를 사형시켰다면 국가적인 손실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생각해보면,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도 패자에 관대한 사회는 아니라고 할 수 있겠죠. 비교적 인생의 초반기인 20대에 학벌을 갖추지 못하면 "패배자"로 낙인을 찍어버리고, 또 대학 졸업 후에도 정규직이 되지 못하면 "패배자(비정규직)"으로 낙인을 찍어버리니 이래저래 "패배자"에 속하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모험심, 도전의식 이런 것들을 잠시 접어두고, 고소득, 고용안정을 추구하게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패자에 관대했던 로마가, 패자에 엄했던 카르타고를 이겨 지중해를 제패하듯이, 우리나라에서도 "사람은 변할 수 있다.", "실수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웠을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패자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는 문화가 자리잡으면 실패를 만회하려는 패자들의 노력이 대한민국에 오히려 더 큰 성공을 가져다주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끝으로, 안철수교수님의 한 말씀 올려봅니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실패의 요람이죠. 하지만 실패를 용인한다는 게 달라요. 점점 성공의 확률이 높아지거든요. 하지만 우리는 실패를 하면 재기가 어렵기 때문에 20대 인재들이 도전을 꺼려요. 그래서 20대가 안정지향이 되는 거죠. 사회시스템이 이들을 소떼로 몰고 가는 거예요. 불량 청소년은 없어요. 불량어른만 있지요. -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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