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세프 친선대사 구로야나기 테츠코씨가 쓴 <토토의 눈물>이란 책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엄마가 죽은 건 전부 내 탓이야. 날 살리려다 엄마가 죽었어."
아이가 엄마를 잃게된 근본적인 원인은 부족간에 전쟁을 일으켜 난민을 발생시킨 사람들에게 있었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닥친 불행을 모두 자기 탓이라고 여기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기 전에 스스로를 원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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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나서, 문득 우리나라의 20대들도 아프리카의 아이들만큼이나 순수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른들이 사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은 것은 원망하기 전에, 어른들이 좋아할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며 홀로 조용히 도서관을 찾는 우리나라의 20대들의 모습에서 순수함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20대들이 마냥 순수하기 때문에 도서관을 찾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복잡한 사회문제 따위에는 신경쓸 겨를이 없는 것이 더 정확한 이유이겠지요. 졸업은 다가오고, 취업은 해야하므로 학점 관리도 해야하고, 영어 점수도 올려놔야 할 것입니다. 남들 다 가는 어학연수를 가기 위해서는 돈도 벌어두어야 합니다.
얼마전 다음 아고라에 한 대학생이 올린 '20대가 말하는 20대의 현실'이라는 글을 보니 공감이 가는 부분이 참 많더군요.
시위를 제대로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학생들에게 목숨이 걸린일은 취업이고 (강조드리지만 취업하기 장난 아닙니다. 제가 서울대학교 학생임에도 취업위기를 느낀다면, 다른 학교 학생들은 어떨까요?) 정치문제는 지금당장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보여집니다. (중략) 그렇다고 술과 섹스, 스포츠에 미쳐있는 20대 라고 표현할것도 없습니다. 태반의 20대는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20대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20대의 한 사람이지만, 제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 다들 너무나 열심히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지금의 20대들은 다른 어떤 세대보다도 우수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이 열어놓은 문이 너무 좁은 탓에 필요이상의 과잉경쟁을 하느라 젊은 날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처럼 피곤한 20대의 현실을 보며, 예전 어느 모임에서 보았던 "신문지 게임"을 떠올렸습니다. "신문지 게임"의 게임룰은 무척 간단합니다. 우선 신문지를 한 장 펼쳐놓고 사람들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계속 신문지를 반으로 접어나가면서 신문지 위에 가장 많은 사람이 남는 팀이 승리하는 게임이지요.
한 단계 한 단계 지날 때마다 발 밑의 신문지는 계속 반으로 접히기 때문에 결국 누군가는 신문지 밖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한번 신문지 밖으로 밀려난 사람은 다시 신문지 안으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대한민국 20대는 신문지밖으로 밀려나가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버티는 중인 것입니다.
하지만 20대들이 어른들이 열어놓은 좁은 문을 향해 정신없이 달려가는 동안 어른들은 점점 문을 닫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대한민국의 우수한 20대들이 문을 닫으려는 어른들을 막을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닫혀져가는 철문에 머리를 들이밀기 위해 서로 무한히 경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20대 젊은이들 사이에 '연대'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죠. 비록 좁은 문이기는 하지만, 문이 완전히 닫힌 것은 또 아니어서 "나도 혹시?"라는 희망을 갖지 않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88만원 세대>를 쓴 우석훈 교수는 이것을 두고 "희망고문"이라고 지적하신 바 있습니다.

88만원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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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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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리한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연약한 개인'의 '연대'가 필요하지만, 지금의 20대는 앞선 세대가 시도한 개혁이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연대를 통한 개혁'이 투입한 노력에 비해 결실이 보장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결국 성사여부가 불투명한 일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보다는 내 능력으로 해결가능한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낫겠다는 극단적인 '자기보호'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개인으로 봐서는 그것은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인간은 언제나 최소 투자로 최대효과를 얻길 바라는데, 최대투자를 해도 최소효과가 보장되지 않는 일에 관심갖기는 쉽지 않겠지요.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합리적인 판단이 모이면 국가 전체로 봐서는 굉장히 부정적인 현상이 벌어집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지금 우리나라의 출산율이겠지요. 각 가정마다 아이를 갖는 것에 적지않은 부담을 느껴 출산을 미루거나 아예 계획을 갖지 않는 "합리적 판단"이 모이자, 대한민국의 존망을 위태롭게 만드는 저출산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의 위기에 대한민국의 20대가 대응하는 방법 또한 굉장히 부정적인 현상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합니다. 사회의 변혁이라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는 요원한 꿈일 뿐이며, 그 꿈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박수 대신 냉소를 보내는 '허무주의'와 '냉소주의', 거기다 '나만 잘살면 돼'라는 '기회주의', '이기주의'가 득세하게 되면, 우리 사회는 엄청난 기회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고, 삶의 질은 추락할 수밖에 없을테니까요.
그렇다면, 해결책은 뭘까요? 해결책이 있긴 할까요?
많은 전문가들이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아보입니다. 이미 사막의 모래알처럼 바싹마른 황량한 마음들을 찰흙처럼 단단하게 뭉치게 만드는 일이니까요. 많은 분들이 지속적으로 물(관심)을 공급해주지 않으면, 잠시 촉촉해졌다가 이내 다시 바싹마르기를 반복할 뿐이겠죠.
따라서, 뭔가 다른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지금 20대들을 고단하게 만드는 이 상황은 결코 대한민국의 20대들이 나태하거나 무능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지금 20대들이 업무에서는 필요하지도 않은 영어공부를 하느라 시간과 노력과 금전을 투입하는 것들, 이런 불필요한 비용을 청구하는 사회에 대해 지금의 20대들은 분노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식당에서 단돈 1000원이라도 계산을 잘못해주면 불쾌해하면서, 수백만원씩 하는 등록금을 내게 만들고, 수십만원씩 하는 학원비를 내게 만들고, 소중한 20대의 나날들을 독서실에 보내게 만드는 이 시스템에 대해서는 왜 분노하지 않는 것인지 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침묵은 금이 아닙니다.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사람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란 말도 있듯이, 묵묵히 엉터리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 올바른 민주시민이 아니라,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며 당당하게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 올바른 민주시민인 것입니다.
정치가 혐오스럽다고 계속 외면해보십시오. 정치를 외면하는 사람들을 신경써줄 정치인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법안들이 나도 모르게 하나 둘씩 통과되어 우리의 숨통을 조를 뿐입니다.
분노하십시오. 괜찮습니다. 당신만 분노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분노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분노하는 사람들의 연대가 자연히 만들어질 것입니다.
끝으로 1976년에 개봉된 영화 '네트워크'의 일부분을 올려봅니다. 지금부터 30년도 더 옛날에 만든 영화인데도 어쩌면 이렇게 오늘날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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